요나는 니느웨의 회개를 위해 외쳤지만
나훔은 니느웨의 심판을 위해 외친 선지자입니다.
같은 도시에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기도 하고
진노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나훔은 하나님의 경고이지만 동시에
그 백성에게 회복의 소망을 줍니다.
나훔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첫째, 대적하는 자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입니다.
1-2절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질투는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헛된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은 질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복하십니다.
보복은 하나님의 의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습니다.
두 가지 하나님의 성품은 사실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3절 말씀처럼 때로 노하기를 더디하시지만
그렇다고 죄인을 내버려두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경계해야 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당장 문제가 없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마침내 그 진노를 나타내실
때가 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의지하는 자들을 보호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온 세계를 그 뜻대로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6절 말씀대로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곳이 없으며
숨을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진노를 드러내실 때
범람하는 물로 진멸하시고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십니다.
9절 말씀처럼 아무리 잔꾀를 내고 피할 길을 찾아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아무리 강하고 많을지라도
하나님은 대적을 반드시 멸절하십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때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품속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이켜야 살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십니다."(7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우리를 지키시는 견고한 산성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을 보호하시며 지켜주십니다.
셋째, 택하신 백성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대적들에게 진노를 쏟아부으시지만
택하신 백성에게는 회복의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다가 악한 자들에게 괴롭힘을 받고
악한 권세에 눌려 살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에서 우리를 반드시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은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멍에를 지게 한 '그'는 앗수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대적의 권세에서 풀어주시고
자유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은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대적에게서 건져주시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면서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