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를 계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에 다윗은 요압을 불러 명령합니다.
하지만, 요압은 다윗의 계획에 반대합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요압을 재촉합니다.
할 수 없이 요압은 무려 3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온 이스라엘의 인구를 계수하여 다윗에게 보고합니다.
하지만, 보고를 받고 난 후 다윗은 곧 자신의 하나님
앞에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저지른 잘못은 무엇입니까?
인구를 조사한 것 자체는 절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조사하는 다윗의 목적이 어디에 있었냐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냥 백성의 수가 궁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알고 싶은 것은 군대의 수!
자신과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울 자가 몇 명이나
되는 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군사의 수는 결국 자신의 힘,
자신의 능력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의 마음 속에는 군사의 수를 확인함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더 많은 전투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잘목을 늦게라도 깨닫긴 하지만!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하고 용서를 구하지만!
결국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벌을 받게 됩니다.
사람을 의지했고! 자랑했던 다윗이! 3일 만에
칠만 명을 전염병으로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이 백성을 치지 마시고 차라리 자신을 쳐달라고!
나의 집안에 전염병을 내려달라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간구합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백성들이
무려 7만 명이나 죽어나가는 장면을 한 나라의 왕으로서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간구를 들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통해 아라우나 타자 마당에
제단을 쌓아 예배하라고 명령합니다.
이를 들은 다윗은 선지가 갓의 명령대로 행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물론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였겠지만!
또 한 편으로는 다윗에게 그 땅은 자신의 죄로 인해
7만 명의 피가 뿌려진 자리!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통곡의 눈물을 흘린 자리! 그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한이 서린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의 일하심이 놀라운 것은 나중에
이 아라우나 타작 마당에 무엇이 세워지는지 아십니까?
역대하 3장 1절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죄로 인한 피값의 장소, 눈물의 장소!
고통과 한의 장소 위에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께서는 좌정하여 함께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자리에! 눈물과 고통의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죄로 인해 더러워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더럽다고 손가락질하고 피하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은혜로 그 모든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죄를
덮어주십니다.
죄로 인해 무너져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 괴로워하며
통곡하는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잔칫집에 가 있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늘 언제나 초상집에 있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스로 의롭다 생각하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며 스스로를 죄인이라 자책하는
세리의 기도를 기뻐 받으시는 분입니다.
나의 죄로 인해 매일 눈물을 흘리십니까?
나의 못난 점, 나의 모난 점, 나의 실수
나의 실패로 인해 매일 머리를 쥐어 박고 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그 눈물과 고통, 괴로움, 좌절의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를 통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실 것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어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