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이렇게 전합니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절입니다.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누군가 악한 일을 저질렀을 때 바로 심판이 임한다면!
그에 대한 징벌이 바로 임한다면!
누가 죄를 함부로 짓겠습니까?
그런데 말씀은 악한 일을 저질러도 속히 징벌이
내려지지 않으니 사람들이 어떻게 한다고 전합니까?
‘오히려 악을 행하는데 담대해진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세상에 악인이 얼마나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오히려 의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고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히려 착하게 사는 사람이, 양보하며 사는 사람이
믿음을 갖고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무시 받고
손해 보고, 핍박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세상이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이 아닙니까?
오늘 말씀 14절에서도
악인들의 행위에 누가 벌을 받는다고 합니까? 의인!
그리고 의인들의 행위에 누가 상을 받는다고
합니까? 악인! 악인이 상을 받고!
의인이 벌을 받는! 이런 세상 속에서!
누가 의인 됨을 추구하고 싶겠습니까?
누가 착하고 양보하며 헌신하며
또한 말씀대로! 믿음을 갖고 살아가고 싶겠습니까?
그럼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모순 투성이인 세상 속에서! 오늘 전도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까?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15절)
무슨 말입니까?이해할 수 없는 세상!
내일을 알 수 없는 세상! 다 잊고 그냥 먹고
마시고 오늘을 즐기면서 살아라! 이런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즐거움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사는 동안 열심히 사는 데서 찾아야 한다”
라고 말씀은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생각하고! 아무리 연구해도!
내일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순간에도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답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다 설명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의 전도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의인이 고통 받고
악인이 득세하는 현실 속에서!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냄으로 그 안에서 얻는 즐거움을 누리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삶이 가능합니까?
어떻게 억울하고 불공평한, 공정과 상식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주어진
일을 성실히 살아가며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당장 눈에는 악인이 잘 되는 것 같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그들의 운명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의 운명은
결코 잘 되지 못한다! 그들의 끝은 반드시 죽음이다!
영원한 죽음이다!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 때문이 아니라!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상주시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를 반드시
벌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를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수고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가운데 즐거워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