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권능에 힘입은 날들을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출애굽 사건으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유월절 다음날"에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3절)
그래서 3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라고 기록합니다.
우리의 과거 중에도 이와 같은 날들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은 완전히 포기했던 순간,
스스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라는 말을 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날들을 통과해 오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큰 권능'으로
역사해 주셨기 때문인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우리가 약했던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의 강하심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큰 권능으로써 구원을 베풀어 주셨던
은혜의 순간들을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해야 합니다.
8~9절에 등장하는 "마라"는 이스라엘의 고질적인 죄가
제일 처음으로 나타났던 장소였습니다.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을 의심하며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쓴 물을 달게 만들어 주심으로써
그들을 오히려 선하게 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라’를 떠나서 다음에 진을 치게 된 "엘림"에서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주"를 만나게 됩니다.(9절)
마라에서 물맛을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음 장소에서 풍성한 것을 예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던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죄를 범하던 그 순간이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죽어 마땅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까지 되었을 때'조차
한번 택하신 자를 끝까지 사랑해 주시며
오히려 우리의 인생에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주'를
예비해 주셨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매 순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살아왔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의 대부분을
그저 떠나고 진을 친 지명들만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지명만 기록된 대부분 날들은 평범하고
순조롭게 흘러간 날들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일상적으로 보이는 날들 역시 하나님께서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스라엘을 위해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광야 사십 년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매일 아침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특별한 사건 없이 지나간 지명들도
하나님의 지극히 특별하신 인도와 섭리가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도 평범한 날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별일 없다고 생각한 날들, 특별한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 지난날들도 저절로 지나갔던 날은
단 하루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삶 속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매 순간 주관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