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 선 욥을 위해
욥의 친구 엘리바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세 친구 중에 가장 연장자였습니다.
그만큼 경험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욥의 상황을 주시했습니다.
일 주일 간 욥 옆에서 금식하며 그의 고통을 함께 했습니다.
이를 통해 욥이 겪는 문제를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문제를 해결할 공식을 찾아냈습니다.
그 공식은 바로 정의로운 자가 망하는 경우가 없고,
악인은 제아무리 사자처럼 위세를 떨쳐도
하나님의 징벌에 허망하게 꺾인다는 “인과응보”였습니다.
엘리바스는 이 공식으로 욥 역시 다른 여러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듯이 이제 이 공식을 자신의 문제에
적용하여 해결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 당장은 크게 잘못한 것이 없어
보이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것이 없어 보일지라도!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더 의롭고, 더 깨끗한
인간은 없기에! 빨리 그 죄 된 자리에서 돌이킬 것을!
강력히 권면합니다. 그러면! 지금이 당하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
단언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공의롭고!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 공식 안에서 일하시는 분입니까?
인과응보의 공식! 권선징악의 공식에 따라서 반드시
역사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까?
물론!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죄 지은 자를 징계하십니다. 엘리바스의 이 믿음이 100%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엘리바스가 놓치고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마저도 반드시 그 공식에 따라 행하셔야 하는
분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야 말로 진정한 힘을 가지신 분이시고!
하나님이야 말로 최고의 권력을 가지신 분으로!
마땅히 해야 할 힘을 가지셨을 뿐만 아니라!
마땅히 하지 않아도 되는 권한을 가지신 분!
즉, 하나님은 공식 너머에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엘리바스는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온 세상이 엘리바스의 신앙 공식대로 통치된다면!
과연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인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보응의 원칙에 따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면
과연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전지전능하심을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반드시 죄인으로 심판받아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질 우리를 위해! 철저히 인과응보의
원칙 하에 심판을 받아 마땅한 우리를 위해!
하지 않으심으로! 그 능력을 숨기심으로! 아니 대신
죽으심으로! 그의 하나님 되심을 온 세상에 드러내신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닙니까?
그래서 정말 무능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한
분이 바로 전지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닙니까?
여전히 우리는 욥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
몸부림 칠 수 있습니다. 지금 그런 시간일 수도 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바스가 욥을 공격한 것처럼! 누군가로부터!
정죄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죄를 지어서 그런 거라고!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주일 예배를 빠져서 그런
거라고!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가난해지고, 그래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라고! 인과응보의 공식의 틀 안에
우리를 넣어 무자비한 폭력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욥을 생각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때! 우리의 믿음 너머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인간이 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눈으로 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