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6장에 이어서 7장도 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엘리바스에게 대답한 후에 스스로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고 있습니다. 욥의 탄식을 통해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할 이유를 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인생의 허망함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욥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며 극심한 피부병으로
고생하면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힘든 노동 후에 삯을 기다리는 품꾼과 같다.",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지나는 희망 없는 존재구나.",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구나.", "구름 같이 사라져
스올로 내려가겠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이 이렇게 고통 가운데 사라지는 허망한
존재라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깐 존재할 뿐입니다. 약4:14은 "너희가 내일
일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합니다.
더구나 악인이 형통한 것처럼 보이고 욥 같은 의인도
끔찍한 고난을 당하니 '바르게 살면 된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습니까? 이런 인생길에서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잠깐 존재하는 동안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인생의 덧없음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겪는 부귀영화도 잠깐입니다.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겪는
모든 고통도 잠깐입니다. 바람 같이 사라질 것입니다.
허망할 정도로 짧은 인생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모든 상황을 이길 수 있는 소망의 길입니다.
그래서 전3:14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뺄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라고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욥은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이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리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은 것을
택하리이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15-16절)
한 마디로 이처럼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살고 싶지 않으니
자신을 놓아달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의로운
삶을 살았아도 욥 같은 고난을 당하면 이런 불평을 할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불평 속에서도 욥은
그의 생명의 주권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나를 지키지 마소서."(12절),
"나를 놓으소서."(16절) 욥은 차라리 데려가시든가
아니면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욥은 여전히 하나님의 손 안에, 하나님의 뜻
안에 자신의 삶이 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18절)
자신의 삶이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또한 욥은 20절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욥은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살피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모든 상황을
살피시며 순간마다, 날마다 돌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그의 은총을 베푸실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