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욥의 친구들은 욥을 정죄하기 바쁩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경건함을 책망하시겠느냐?
너의 고통과 고난은! 너의 큰 죄악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느냐?’ 라고 따집니다.
심지어 이번 대화에서 엘리바스는 욥이 지은 죄를
특정하기까지 합니다. 6절부터 보면!
엘리바스는 욥이 분명히 헐벗은 자의 옷을 벗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지 않았고, 주린 자에게서 음식을
빼앗았으며,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냈고, 심지어
고아의 팔을 꺾어 그가 가진 것을 빼앗았다고!
이런 파렴치한 죄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욥을 고발합니다.
그런데, 욥이 이러한 죄를 실제로 지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엘리바스 본인도 모릅니다.
하지만, 욥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니, 최소한 이러한
죄를 지었을 것이라고 추측 하는 것입니다.
아니, 거의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벌을 받을 리가 없다며!
욥의 죄를 특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엘리바스는 욥을 향해 빨리 돌이키라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라고 다시 한번 혼신의 힘을 다해
다그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축복이
다시 임할 것이라 권면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바스는 세상의 것을 천하게 여기고!
오직 하나님을 귀하게 여길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길 때 하나님께서도 욥! 너를 기뻐하실
것이라 말합니다. 또한 엘리바스는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것이라고!
엘리바스는 욥을 향해 마지막으로 충고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엘리바스의 권면은 앞서 계속 말했듯이
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하나같이 다 정답입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추구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는 것!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것!
하나님께 앞에 겸손한 자는 구원하심을 경험한다는 것!
이 모든 엘리바스의 권면은 너무나 정확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엘리바스의 이 옳은 말속에서 틀린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 순서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을만한 마땅한 행동을 해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의 사랑을 베풀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크신 은혜는!
우리가 먼저 무엇을 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받을 만한 마땅한 행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럴만한 행동을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찾아오십니다.
먼저!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먼저! 희생으로 섬겨주십니다.
그렇게 먼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의
크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인과응보의 원칙을 다 깨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깊이 묵상하시길 축복합니다.
먼저 찾아오신 이 놀라운 은혜를 마음에 새길 수 있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내실 수 있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