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엘리후는 여전히 옳은 말 퍼레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엘리후는 욥을 향해!
”내가 죄를 지었다고! 내가 하나님께 범죄하였다고“
회개 했느냐고 따집니다.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라고! 다그칩니다.
심지어 욥의 의로움이! 욥의 범죄하지 아니함이
도대체 하나님께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하나님은 크고 위대한 분이시기에!
현재 욥 네가 억울함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욥이 간구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으시는 것도 욥이 네가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기 때문이라고
욥의 억울함에 대답을 내리기도 합니다.
물론 이 엘리후의 말은 다 정답입니다.
어제부터 이야기하지만 다 옳은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모든 엘리후의 말은 다 진심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 편을 들고 있고.
그래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엘리후는 진심으로 욥을 향해 충고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욥이 회개하여 이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길
무엇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 모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길!
진심으로! 욥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엘리후의 그 진심의 끝이 무엇이었습니까?
”욥 네가 끝까지 시험을 받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너의 말이 악인과 같이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벌을 더 주셔서!
욥의 모든 악행을 보셔서 심판하셨으면 좋겠다!
더 이상 욥의 입에서 헛된 말을 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심판하셨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고통 가운데 있는 욥을 향해
지금도 더 내려갈 곳이 없는 비천한 욥을 향해
엘리후는 그 고통이 더 극심해지길
아니 하나님께서 더 가혹하게 심판해 주시길
욥을 저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엘리후의 진심은!내 말이 옳고 너는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진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엘리후의 이 모든 말 속에 담긴 것은
진심이었지만! 그 진심은 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또한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포장은 했지만!
자신을 위한 것! 자신을 드러내고 증명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엘리후의 중심에는 사랑이 없음을 그의 말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옳은 소리가 아닙니다.
많은 정보도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도 있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지 않습니다.
친구들의 그 모든 옳은 소리를 모르지 않습니다.
엘리후가 말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고 욥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진심이 아니라!진심으로 가장한 내 뜻!
내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가 누린 십자가의 그 사랑으로!
한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