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후는 욥의 다른 세 친구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말들로 욥을 아프게 합니다. 여전히 욥을 괴롭힙니다.
엘리후의 말이 다 옳은 말이지만 그 옳은 말이!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틀린 말입니다.
그럼에도 엘리후는 다른 세 친구들과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그래서 그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고난에 대한 다른 해석을 펼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엘리후는 고난이 주는 유익이 있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고난은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고난을 통해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게
되고, 그래서 바른 교훈!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c.s 루이스 역시 그의 책 “고통의 문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고통과 고난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고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난과 고통 가운데!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른길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엘리후가 말하는 고난의 두 번째 유익은
고난은 소망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엘리후의 말처럼 내 상에 기름진 것이 놓이는 것!
원수의 목전에서 기름진 상을 받는 것!
얼마나 통쾌하고 생각만 해도 기쁜 일입니까?
우리가 이 놀라운 반전의 역사를 기대하며
지금 당장의 고난과 시험을 감당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더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은!
원수의 목전에서 차려지는 상! 기름진 것이 놓여진 내
풍성한 식탁!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질 내 소망!
그 자체가 아닙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는 “주님!”
나를 환난에서 끌어내사 넉넉한 곳으로 옮기셔서
나의 상에 기름진 것을 올려주시는!
“하나님의 손!” 그리고 환난을 통해 소망을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런 상이 없을지라도!
당장은 소망이 아니라 절망의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반드시 소망을 이루실 하나님으로
인해! 오늘의 시험과 고난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죄로 인한 고난이든! 욥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으니! 결국은 고난도 유익입니다. 고난 중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허락한 이 믿음의
길을 살아내는 자가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