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를 대표하는
서기관을 신랄하게 비판하십니다. 서기관은 당시
말씀을 연구하고, 실질적으로 말씀을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였으며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위치! 즉,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모두 인정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긴 옷을 입고 다니고, 시장에서 문안 받으며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탐하는!
서기관을 삼가라!고 그들과 가까이 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외식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종교적이지만
그들의 삶은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며 또한 가르치는 말씀!
율법과 상반되는 삶을 살아가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가장 가난한 자로 여김을 받았던 과부의 가산까지도
빼앗는 파렴치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 뿐이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삼가라! 그들을 멀리하라!
그들에게서 그 어떤 것도 배우지 말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두 렙돈 헌금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는 욕심에 눈이 멀어 가난한 과부의 가산까지도
삼키는 종교지도자! 대표적으로 서기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두 렙돈 오늘날로 치면! 겨우 천원도 되지 않는 돈을
받아 챙기는 탐욕적인 종교지도자와 부패한 당시 종교시스템을
예수님께서는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부패한 지도자가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35부터 37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오실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혈통으로 오실 자가 바로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 속에 담긴 그들의 기대는 다윗과 같은 왕
그리고 다윗의 뒤를 이어 태평성대를 이룬 솔로몬과 같은
왕을 기대한 것입니다. 아니 왕을 기대한 것보다
다윗왕과 솔로몬왕때 누렸던 부귀영화를 기대하며
다윗의 자손으로 오는 이가 다시 그때의 부흥의 역사를
회복할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온 통 이 땅에서의 복! 이 땅에서의
성공만을 기대하고 추구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메시아관을 지적하십니다.
그들이 기다려야 할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으나
다윗도 주라고 부르신! 그래서 이스라엘의 회복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이루실 온 인류를 위한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늘 연구하고, 묵상하고, 가르쳤지만!
그 말씀을 이들은 온전히 깨닫지 못했고!
오히려 그 말씀을 자신만의 소유물로 만들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마치 이 세상이 전부인 냥!
이 세상의 것에 온 마음이 다 빼앗겨 이 세상의 것으로
만족을 누리고 그것들을 자랑하며 사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기대한 메시아는 어떤 분입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루실 그 나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그 나라는 어떤 나라라고 믿고 있습니까?
신앙을 도구 삼아 내 욕심을 이루는 삶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태평성대를 꿈꾸는 삶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
그렇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다윗의 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또한 예수님께서 온전히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자로서 살아가야 할 믿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자는 기꺼이 섬기는 삶! 또한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오늘도 기꺼이 이웃을 섬기며 나누는 자로 살아가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