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헤롯 왕은 유대인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를 핍박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유력한 자를 잡아 가둔다면 더 인기가 높아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잡힌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룻밤만 지나면 그는 꼼짝없이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갑자기 주의 사자가
나타나 베드로를 묶고 있던 쇠사슬을 풀어버립니다.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은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지키던
파수꾼 곁을 지나갑니다. 그런데, 아무도 베드로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또한 잠겨 있던 쇠문이 알아서 열립니다.
베드로도 이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죽을 위기 가운데 기적처럼 구원
받았습니다. 베드로를 향한 모두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몰라도! 분명히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베드로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구원의 이야기가! 마냥 신기하고,
놀랍고,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닌 이유는! 아니 뭔가 마음
한구석이 씁쓸한 이유는 베드로의 기적적인 구원 사건 앞에
또 다른 한 사람의 이야기 때문입니다.
헤롯 왕은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 하기 전에! 먼저 한 사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칼로 죽였습니다. 바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사건을 통해서 왜 베드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구원해 주셨으면서 야고보에게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셨을까? 라는 질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고보보다 베드로를 더 사랑하셨을까요?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였기에 야고보는 외면하고 베드로만
살려주셨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복음서에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
관한 한 가지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었을 때 한 사람은 우편에 한 사람은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청탁한 이야기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이에 대해서 요한과 야고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마실 수 있다고 답을 했습니다. 이들은 그 잔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시려는 그 잔이 결코 승리의 잔
축배의 잔이 아닌 고난의 잔, 십자가 죽음의 잔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거리낌 없이
그 잔을 마시겠다고 답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자신이 알든 모르든! 이때 각자의 사명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마시려는 그 잔을 이들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그 사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신이 받은 이 사명을 어떻게 이룹니까?
아니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부르심을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앞서 살펴본 대로 사도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어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반면 그의 형제 사도 요한은 제자 중에 가장 오래 살아남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전하는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땅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 이 땅에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큰일을 했느냐? 또 얼마나 유명한 자가 되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년을 살든! 아니 10년! 50년! 100년을 살든!
내게 허락된 사명을 감당했느냐?그 사명을 완수했느냐?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냈는냐?라는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비록 제자 중에서 가장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잔을 마시는 사명
기꺼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주되심을 증거 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습니다. 비록 그는 베드로처럼 기적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겨우 단 한 줄 “칼로 죽임을 당했다!”
라는 기록만 남겼지만, 그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
모두에게 믿음의 용기를 주는 삶을 살아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온전히 살아내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을 다 할 때!
감히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