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봉독한 본문에는 한 인물을 소개하는데,
바로 아볼로입니다. 말씀은 그를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그는 성경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언변이 좋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어려서부터 주의 도!
즉, 예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웠고, 또한
이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아볼로에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그는 ”요한의 침례"만
알았다는 점입니다. 그의 가르침은 요한까지였습니다.
이 말은 아볼로가 전한 말씀이! 복음이! 온전하지 못한!
복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단지
아볼로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9장에서 사도 바울이 만난 에베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 역시 성령을 받았느냐? 라는 사도 바울의 질문에
성령의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 역시 아볼로처럼 침례의 요한까지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가르침 그리고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대까지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합니다. 불완전한 복음이 선포되었으니
이를 듣는 자들 역시 불완전한 복음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것이 불완전한 복음인지도 모르고
그것이 바로 온전한 복음인 줄 알고 믿는 자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강단에서 온전하지 못한 복음이 선포됩니까?
얼마나 자주 십자가의 희생을 무시하는 값싼 복음이
선포됩니까? 또 얼마나 많이 십자가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구원 이후의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복음이 선포됩니까?
이 시간 내가 믿는 복음이 온전한 복음인가?
나 역시 아볼로처럼! 에베소서 사람처럼!
침례 요한이 전한 복음이 전부인 것처럼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내가 어떻게 이 땅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사도 바울인 전한 복음에 비추어
진지하게 돌아보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인물이
또 나옵니다. 아볼로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온전한
복음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히 전했습니다.
그런데! 아볼로의 가르침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던 자가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이들은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사도 바울과
함께하며 때로는 동역자로서! 때로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자들이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였습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온전한 복음이 무엇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또한! 아볼로가 선포한 말씀이 온전하지 못한
복음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전하지 못한 아볼로의 가르침을 듣고 난 후
이들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여기서 “데려가다.” 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정중히 모셔가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잘 대접하다. ”는
뜻도 포함합니다. 전체 문맥을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들이 사도 바울을 만난 일부터!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삶을 통해! 바울로부터 어떤 말씀을
배우게 되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아볼로가 무안하지
않도록 그리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를
무례하지 않게 잘 풀어 설명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아볼로 역시 그러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따뜻한 환대 그리고 조심스러운 가르침으로 인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또한 그들로부터 잘 배워 한 단계
성장하는 시간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이러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르침으로 인해
아볼로는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자로 많은 자에게
큰 유익을 주는 자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가르침을 넘어서!
오신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의 메시아이시다!
그가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라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볼 때
얼마나 부족한 것을 많습니까? 얼마나 실수투성이입니까?
어떻게 저런 자가 목사인가? 싶기도 하고
어떻게 권사고 장로고 집사인가? 어떻게 교회 다닌다고
할 수 있을까?싶은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우리가 모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부족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자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함께 지어져 가는
우리 기흥지구촌교회! 아볼로가 더욱 성장하여 더 많은 자들에게
유익한 자가 된 것처럼!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 더 많은
유익을 주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길 기대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