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기약이 이르면” 정해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의 나타나심을 온 천하에 다 보이신다!
즉,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신다! 라고 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셔서
모든 일에 대해서 결산하십니다. 그래서 악한 자는
영원한 죽음! 의로운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그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렇다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 믿음의 여정은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를 무너뜨리려 하고
우리를 포기하게 하려는 사탄과의 끊임없는 전쟁
가운데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 나가야 하는
과정 가운데 지금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그때까지
계속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싸움이기에 우리의 믿음의 여정은 쉽지 않습니다.
고통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렇기에
이렇게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먼저는 모든 생명의 주권자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죽음과 같은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그 죽음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는 확실한 믿음
안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고통의 길을 걸어가신!
좁은 길로 걸어가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 역시
한눈 팔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따라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역시 오늘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온전히 감당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온전히 감당하여 예수님 다시 오셨을 때!
기쁨으로 예수님을 맞이하는 오직 예수님께만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는 우리의 삶이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우상은
바로 바알입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시간이 흘러도 바알은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지도
홀로 버려두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알은 당시 풍요의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다 바알 덕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 이르러 아니
오늘날 지금까지 바알은 그 이름만 교묘히 바꾸어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맘몬이 바로 그것입니다.
돈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 속 우상을
제거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의 자리를 오직
하나님께 내어드릴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둔 자는!
기꺼이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너그러운 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의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세상이 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으로!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한 영화에서 변절한 친일파가 변절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냐?”
오늘 말씀은 분명히 전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합니다. “예수님께서 반드시 다시 오신다!”
그러니 그때 몰랐다는 말! 진짜로 예수님 다시 오실 줄
몰랐다는 말이 아니라,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기쁨으로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온전히
감당하시길! 그리고 오직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자!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는 자로
오늘을 살아내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