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디모데후서는 디모데전서와 그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디모데전서는와 후서는 모두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디모데에서 쓴 편지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전서를 쓸 때는 가택연금 수준의 감옥이었다면 후서는
그보다 상황이 매우 심각해진 상태로 바뀌었습니다.
당시는 로마 대화재가 발생하여 그 화재의 책임을
당시 기독교인에게 돌려 로마 시민의 분노를
네로 황제 자신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모조리 잡아 감옥에 가둘 때였습니다.
감옥에 가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사형 선고까지 하던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극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때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때
자신이 감옥에서 나가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을 예상하고
마지막 유언처럼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디모데는 아들이었습니다. 제자로 시작해서
지금은 동역자로 함께 했던 디모데를 아들처럼 아꼈습니다.
그냥 아들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그런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디모데 역시 극심한 핍박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사역으로 인해!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핍박으로 인해 두려운 상황에 처한 디모데에게
지금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여러분이 지금 사도 바울이라면 디모데에게
뭐라고 편지를 쓰시겠습니까? 당연히! 어떻게 하면
이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이 두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주변에 혹시라도 도움을
줄 사람이 있을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편지에 그 사람을
찾아가보라고 쓰지 않겠습니까?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 소중한 아들이니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뭐라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까? 8절 하반절입니다. “고난을 받으라”
‘고난을 피하라' 가 아니라! ‘고난을 받으라! 지금의 핍박을
지금의 희생을 감수하라!’ 라고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지금의 고난은! 핍박은!
바로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 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복음을 위한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위해 갇혔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자신이 죄를 저질러 갇힌 것이 아니라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명을 감당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복음을 위해 당하는 ‘이 고난도! 이 핍박도
이 희생도! 피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히
감당하라! 당당히 받으라!’ 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과 함께하면 성공이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명예가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과 함께 하는 길은 고난일 수 있습니다.
희생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과 함께 하는 길은
낮은 길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가리키는 길은
세상이 추구하는 방향과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결코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넓고
좋은 길이 아니라 좁고 험한 길!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믿는 자는 달라야 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믿는 자로서
받는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아무 어려움 없이! 아무 불편함 없이!
아무 희생이나 손해 보는 것 없이 살아갈 때! 지금 과연
나는 복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믿음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세상이 말하는대로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먼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어릴 적 외모로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받은 거짓이 없는 믿음을 점검할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이 길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디모데를 향한 사도 바울의 이 권면을 우리도 아멘으로
받을 수 있길 축복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이 권면에 아멘함으로 오늘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자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