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상태를 여러 비유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우선 달궈진 화덕입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요리할 때만 불을 켜는 것과는 다르게 늘 화덕에 불을
피워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합니다.
단지 불의 정도만 강하게 했다가 약하게 했다가를
조절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달궈진 화덕과 같다는 말은
언제든 요리할 준비가 된 것처럼!
이들은 언제든 죄를 지을 준비가 된 자라는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뒤집지 않은 전병으로
비유합니다. 전병을 불에 잘 익히기 위해서는
잘 뒤집어 주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게 되면
당연히 한 쪽은 타고 다른 한쪽은 덜 익게 됩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즉 북이스라엘이 마치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다고 합니다.
이는 한쪽은 우상숭배에 빠져 이방신을 섬기면서
동시에 다른 한쪽은 아무렇지도 않게 성전에 나와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의 이중적인 모습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호세아는 이렇듯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 그래서 늘 죄를 지을 준비가
된 자들! 일상적인 삶 속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상을 숭배하면서 또 아무렇지도 않게 성전에 나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자들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결과는 죽음임을 분명히 전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
이들을 치료하기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죽어가는 이스라엘을 고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호세아를 통해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 보이시고!
그래서 깨달아 유일한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께 나오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릇 갔음이니라”
치료자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건져주시려 손을 뻗고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손을 내밀어
결국에는 온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호세아는
하나님이라는 과녁을 향해 날아가야 할
활이 아니라 엉뚱한 곳을 향해 날아가는!
“속이는 활”로 비유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앗수르에 망하게 될 것이며!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호세아는 한탄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치료가 가능함에도! 능히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을 찾지 않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달궈진 화덕처럼!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철저히 영적인 무감각에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래서 그들이 달궈진 화덕처럼
늘 죄악이 만연한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우리 믿는 자들은 늘 깨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텐데!
이미 우리도 뒤집히지 않은 전병처럼! 주일에만
크리스천으로! 주중에는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살아가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이는 활처럼 사람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고
심지어 무당을 찾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적지 않은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책임이 큽니다.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죄가 일상인 삶을 살아가는 달궈진 화덕 같은 세상
속에서! 그리고 뒤집지 않는 전병처럼 이중적 신앙 생활을
하는 자들이 차고 넘치는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더이상 그들이 속이는 화살이 되어 엉뚱한 곳을 향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통해 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우리의 유일한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께!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고! 세상에! 그리고 무너져 가는 한국 교회에
전하는 자가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