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쓰인 것으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누가는 강조하여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그냥 인간이 되신 예수님을 전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낮고 낮은 자리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출생이 바로 그 사실을 분명히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에 밖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메시아의 탄생을 전하셨습니다.
목자는 당시 가장 낮은 자리! 거의
노예와 같은 자리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구유입니다.
여물통은 사람이 누울만한 곳이 아닙니다.
더럽고 누추한 곳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런 곳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왜 그 놀라운 소식을
가장 먼저 목자에게 알리셨습니까?
바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큰 기쁨의
소식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단지 유대인들을 위해서
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을 위해서만!
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온 백성” 의 좋은 기쁜 소식이
되기 위해서!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태어나실 때부터 구유에 누이셨고!
그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당시 무시받고 천대받는
목자에게 알리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품지 못할 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려
낮고 낮은 자리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낮고 낮은 자리!
더 이상 내려갈 수도 없는 그 자리에 오셨기 때문에!
그 낮고 낮은 자리에 있었던 우리가 예수님과 겸하여
식탁의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우리도 기꺼이 낮은 자리로
내려가 그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지금도 고통 가운데, 슬픔 가운데 외로움 가운데 있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 이를 위해 지금도
그 낮은 자리에 기꺼이 내려가시는 예수님처럼!
우리도 기꺼이 낮은 자리로 내려가
그 사랑을 전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