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분쟁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복음으로 인한 분열과 다툼은 필연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주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하고
이스라엘을 해방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유대인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시고
오히려 대립과 갈등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사단의 세력과
의의 하나님 나라의 세력 간에
대립과 갈등은 필연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대립과 갈등은 이 땅에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분열과 다툼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복음으로 새로워졌는데도
분열이나 다툼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악으로 인한 분열과 다툼은 피하되
복음으로 인한 나뉨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큰 평화와 일치를 위해 담대한 마음으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진정한 화평은 영적 투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51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화평은
외적이고 현상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갈등과 분쟁을 타협으로 잠시 덮어 둠으로써
유지되는 것으로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화평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화평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화평을 위해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종교 지도자들과 많은 갈등을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은 기름과 물이 하나 될 수 없는 것처럼
의와 불의가 하나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신앙과 진리 문제 이외의 문제에서는
양보와 타협을 통해 외적인 화평도 도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과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양보하거나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참된 평안은 무조건적인 양보와 타협이 아니라
부단한 영적 투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믿음과 신앙 앞에 타협이 아니라
부단한 영적 투쟁을 벌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일시적이 화평이 아니라
진정한 화평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