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계속된 족보를 통해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다윗의
가문을 통해 인간의 실수, 그 어떤 방해와 위기
속에서도 뜻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 많은 인물 속에서 오늘 본문은
유독 한 인물에 집중하십니다. 바로 야베스입니다.
야베스의 이름은 뜻은 고통이었습니다.
아마도 야베스는 당시 일반 백성을 대표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살아야 했던,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내일! 그래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오늘을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당시 사람을 대표하는 자가
바로 고통이라는 이름의 뜻의 야베스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런 야베스가 이름처럼
고통 가운데 평생 살았습니까? 고통이 마치
자신의 운명인 듯 자포자기하듯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비록 고통 속에 태어났고!
그래서 절망 속에 살아야 했지만!
그의 삶은 그렇게 결론 나지 않았습니다.
“나의 지역을 넓혀주시는 하나님!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 주시는 하나님!”
을 경험하여 형제 중에 귀중한 자라 칭함을 받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고통을 마치 운명처럼
여기며 살았지만 야베스는 만큼은 그 운명을 거르스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10절 상반절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그렇습니다 야베스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셨습니까?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
특별히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심을
오늘 야베스의 삶을 통해 그리고 족보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번 한 달 기도 캠페인으로 진행하는
“기도통장운동”을 통해 운명도 바꾸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야베스” 고통의 삶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귀중한 자라 칭함 받는
우리 기흥지구촌교회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