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세리 마태를 부르신 사건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은 제자를 불러 따르게 하십니다.
그 당시 세리는 로마를 위해 일하고 있었고 동족을 착취하는
자들이 많아 유대인들에게 극히 미움을 받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죄인과 동일하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그 순간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27-28절)
예수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삶의 결단이 제자의 결단입니다.
더구나 레위는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합니다.(29절)
이것이 세리를 미워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비방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 한 명을 얻은 기쁨으로
그의 집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후에 그의 이름은 마태(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가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수 있는
제자가 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예수님은 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가치가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신다고
비방하는 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가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1-32절)
비방하는 자들은 세리와 죄인을 함께 하지 못할
사람들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죄인은 영적으로 병든 자요
회개해야 할 생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죄인을 향한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자신들이 의롭다고 생각하고
죄인들을 정죄한 것뿐 아니라 예수님을 거부하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를 믿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병든 인생인 것을 알고
주님의 치유를 구하는 사람이 복 된 사람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사역을 바르게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을 마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수선입니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사람을 완전히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습니다."(사64:6)
오직 예수님만이 회개하는 자에게 새 옷을 입혀 주십니다.
또한 아직 발효되지 않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새 포도주가 발효되면서
팽창하여 낡은 가족이 터집니다.
그러면 가죽 부대도 버리고 포도주도 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 율법에 매인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 모든 율법이 완성됩니다.
이제 예수 안에서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부터 근본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