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3월 19일 오늘의 묵상
2021-03-19
설교일시
2021년 3월 19일
설교본문
누가복음 19:28-48
설교자
문현필 목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굳이 어색하게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스가랴 9장 9절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은 스가랴를 통해 예언된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나귀 새끼를 어색하고 불편하게 타시고 입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들인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씀 가운데 

예언된 메시아가 바로 나다라고 세상에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백마 탄 왕자와 같은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합니까?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높이는 제자들을 꾸짖어 

더 이상 찬양하지 못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누구보다 

구약의 말씀에 정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귀 새끼 타고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씀보다 당장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인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고난의 길! 고통의 길! 십자가의 그 길을 알면서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그 길이 죽을 길임을 알면서고 가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온전히 이루십니다.

 

2. 평화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41절에서 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예수님께서 왜 우셨다고 전합니까? 42절입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루살렘의 뜻은 “평화의 도시(마을)”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이름의 뜻처럼 평화를 보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은 멸망을 앞둔 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말씀은 그 이유를 이렇게 전합니다. 44절 하반절입니다.

“네가 보살핌을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네가 보살핌을 받는 날”을 직역하면 “네가 방문 받는 때” 라고 합니다. 

누구의 방문을 받는 때일까요?

예루살렘에 나귀 새끼를 타고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방문을 받는 그때를 알지 못해 

결국에는 멸망하고 말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울고 계시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던 예수님께서 지금 

세상을 바라보시며 마찬가지로 울고 계시지 않으실까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한 채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온갖 폭력으로 물든 세상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통곡하시며 울고 계시지 않으실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제자다운 삶!

평화를 전하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룬 우리가 세상 속에서 화평을 전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길 축복합니다.

 

3. 성전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지금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듣는 곳이 

하나님은 사라지고 탐욕으로 가득한 곳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성전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새로운 성전을 세우시기 오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려 도무지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찾을 수 없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무너뜨리고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 성령님을 모신 자들을

성전으로 다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내주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내 안에 탐욕과 거짓, 음란으로 채우면 안 됩니다. 

오직 성령 충만함으로 나의 삶이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자로 오늘 하루 사실 수 있길 축복합니다. 


Menu
ⓒ designyeon
Memb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