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의지합니다.
자기 행위로 하나님께 인정 받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율법을 의지하는 자
자기 행위를 의지하는 자에게
사도 바울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율법에 속한 자들은 모두 저주 아래에 있나니!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진짜로
의지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받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면서 의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을 의지해야 합니다.
행위로 하나님의 사랑을 쟁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그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한 후
절규하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들어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역시 나는 실패자구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 사탄의 작전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율법을 행할 수 없어 저주 아래 놓여있는 우리를
속량해 주신 예수님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속량은 시장 용어입니다. “대신 지불했다!
대신 갚아주었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율법을 행하지 못해 받게 될 저주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셨다! 그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셨다! 대신 갚아주셨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며 살아가는 자가 되지
않으시길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까?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서 사도 바울을
대적하던 자들은 율법을 행할 때 그 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하신 복을
430년 후에 만들어진 율법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을
누리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15장 6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원하신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믿음” 입니다.
그런데! 이 복을 아브라함에게만 허락하신 복일까요?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뿐인 아들을 바치는 믿음을
다 보여야 그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15절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아브라함의 복이 유대인에게 그리고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까지도 미치게 하셨다!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또 그와 약속하시는 그 순간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 놀라운 축복이 “믿음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그 어떤 것으로 폐하게
하거나 또한 헛되게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신실하게 이루어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