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2월 3일 오늘의 묵상
2022-02-03
설교일시
2022년 2월 3일
설교본문
요10:1-21
설교자
문현필 목사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첫째, 우리를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신다고 말씀은 전하고 있습니까?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지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목자들은 양을 한두 마리를 돌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소 1-20마리에서 수백 마리의 양을 돌봐야 하는데,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양에 이름을 

지어주시고 뿐만아니라 그 한 마리 한 마리 이름을 

기억하여 불러주신다고 합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잘 아실뿐만 아니라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내가 너를 잘 안다.

내가 너의 형편을 다 안다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를 앞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양이 홀로 지낼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 몇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우선 시력이 상당히 나쁩니다. 

그리고 잘 넘어집니다. 또 넘어지면 잘 일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방향 감각이 없어 

길을 잘 잃는다고 합니다. 또 그렇게 길을 잃으면 

천적으로부터 벗어날 방어력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양은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기 참 쉽습니다. 

또한 이렇기 때문에 반드시 목자가 필요한 존재가 바로

양인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그 양들을 인도해 갑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도해 간다고 말씀은 전하고 있습니까?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가면”

그렇습니다. 양을 너무 잘 아는 목자는 

절대로 양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양의 특성을 너무 잘 아는 목자는 반드시 양보다

앞서가며 인도해 갑니다. 

이렇게 우리 선한 목자되시는 예수님께도 

앞서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무능함! 

우리의 어리석음을 너무 잘 아시기에 우리보다 

앞서가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분입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합니다. 

숭고한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키우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주인이 과연 있을까요?

선한 목자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길을 잃은 양이라면 어떨까요? 

이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놀라운 주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가산을 탕진한 둘째 아들을 위해 

소를 잡아 잔치를 베푼 헤픈 아버지와 같고,

한 드라크마를 찾았다고 잔치를 벌인 헤픈 여인과 같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았다고 잔치를 벌인 헤픈 주인과 

같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계산을 초월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양입니다. 

길을 잃어 헤매고 있는 양입니다. 

목자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늑대에 잡혀 먹힐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바로 우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찾아오셨습니까? 

그냥 버리고 갈 수도 있는데, 버리고 간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텐데, 우리의 선한 목자되시는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의 위협을 뒤로하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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