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2월 7일 오늘의 묵상
2022-02-07
설교일시
2022년 2월 7일
설교본문
요11:28-37
설교자
문현필 목사


오늘 말씀을 보면 의지할 것 없는 3남매에게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의 친구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을 통해 우리의 친구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친구 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우리와 함께 우시는 분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고 

예수님께서도 비통히 여기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셨다고 전합니다. 

함께 슬퍼하셨고, 마음 아파하셨다고 

말씀은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이제 잠시 후 본인이 

무덤에 직접 찾아가서 무덤 안에 있는 나사로를 

불러내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기뻐하고 찬양할 것을 이미 다 보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울음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울음은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는 울음이 아니라!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아파하고 애통해하는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에 대한 공감의 울음이셨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16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에 

공감을 못하실 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우리와 똑같이 고난을 겪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픔과 슬픔, 고통을 직접 인간이 되셔서 

모두 경험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르다와 마리아의 슬픔의 고통을 아시고 

우셨던 우리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의 슬픔을 아십니다. 아픔을 아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울고 계십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둘째, 죽음의 자리까지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사람은 함께 울어줄 수는 있으나!

함께 아파해 줄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그 슬픔과 아픔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친구되시는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함께 울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형편과 상황을 너무 잘 아시고 공감해 

주시는 분입니다.

뿐만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 그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비통함과 긍휼함 가운데 계시던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는지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의 무덤까지 찾아가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자리를 찾아가시는 것입니까?

당시에는 정결법에 의해서 시신을 가까이하면 

죄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면 

절대로 시신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찾아가십니다. 

이미 죽은 지 4일이나 지난! 그래서 냄새가

풀풀 풍기는 무덤 앞까지 가십니다.

왜냐하면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나사로를 살리셔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친구되시는 예수님께서는 

함께 울어주실 수 있는 분일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바꾸어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하루 3남매의 친구가 되어주셨던

예수님을 만나실 수 있길 축복합니다.

그들의 고통에 함께 우셨던 예수님!

그리고 그들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예수님을 

오늘 하루의 삶 가운데 만나 믿음으로 승리하는

하루 보내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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