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의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첫째, 우리의 삶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분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일만 하다 가시면 충분합니다.
아니 그 일만 하셔도 엄청난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공생애 3년 동안 예수님께서는
문둥병에 걸린 자들! 혈루증 앓는 자! 앉은 뱅이!
먹을 것이 없어 굶는 자! 귀실 들린 자! 몸 파는 여인!
과부! 어린 아이! 당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죄인들을 찾아다니셨고, 찾아다니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고, 먹여 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기시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왜 나사로를 죽음 가운데 내버려두셨습니까?
그리고 또 어차피 다시 죽을 나사로를 왜 살리셨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분이심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시라면!
그리고 그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며 염려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둘째, 더 많은 사람을 영적인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썩어 냄새가 나는 무덤 앞에서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보통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한적한 곳에 가셔서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기도하시는
것과는 다르게 오늘 말씀에 보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람들이 다 듣도록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낸 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으셨습니다.
그 무수한 가르침과 기적 속에서도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분!
그리고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으로
자신을 전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나사로가 머물고 있는 곳인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걸어서 가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가실 수 있는 곳인데, 예수님은 일부러
이틀 동안이나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틀은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언제나 이틀이라는 고통이라는
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고 믿어야 할 것은 이틀 후에
반드시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려내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난 뒤에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자들이 그 모습을 보며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받는 자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라는
이 믿음을 분명히 붙잡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실 수 있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