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2월 10일 오늘의 묵상
2022-02-10
설교일시
2022년 2월 10일
설교본문
요12:1-11
설교자
안용호 목사


예수님을 향한 사람들의 세 가지 반응 (요12:1-11)


예수님을 향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마리아는 예수님을 모신 곳에서 그녀가 소유한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이런 행위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소유한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드린 헌신의 행위입니다.

나사로를 살려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주님을 위해 아낌 없이 드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것도 적당히 헌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릴 수 있는 헌신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일 최선을 드리지 않고 차선을 드린다면 

진정한 헌신이 아니다." 

주님을 위해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위해 

자신을 드린다면 최선의 헌신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드린 성도라면 예수님을 위해 

드리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마리아는 그 본을 보여 준 사람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통해 치부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또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남들에게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웁니다.

유다는 마리아가 무려 삼백 데나리온이나 하는

향유를 예수님께 붓자 놀랬습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저토록 귀한 것을 낭비하다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을 위해 드리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탐욕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헌신을 아깝게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그럴듯한 명분을 들이대고 

주께 헌신한 사람을 비방합니다. 유다가 그랬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5절) 

이렇게 말한 것은 성경은 그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라 도둑이라 가난한 자를 위해 받은 

돈을 훔쳐갈 목적이라고 밝혀줍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이 되지

마시고 더욱 주님께 드린 것이 바로 쓰이도록 힘써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을 향해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님이 베다니에

계신 것을 알고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살려주신

나사로도 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것은 다분히

호기심에서 나온 태도입니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은 그런 사람들 배후에서 

나사로를 죽이려고 모의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대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대명사 같은 대제사장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더구나 그들이 나사로를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 다시 살아난 나사로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나사로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다고

나사로를 죽이려는 대제사장들도 있습니다. 

종교적 지도자들이 오히려 주님을 대적하는 

현상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역사를 보면 언제나 예수님을 대적하는 많은 

종교인이 있습니다. 종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바른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그가 하신 일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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