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5월 2일 오늘의 묵상
2022-05-02
설교일시
2022.5.2
설교본문
룻 1:15-22
설교자
문현필 목사


나오미의 삶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소리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아무리 잘 해도 또 아무리 편하게 해 줘도 가까워질 수

없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관계 속에서 

나오미와 두 며느리는 어떻습니까? 헤어지는 것이 슬퍼!

괴로워 소리 높여 울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나의 모든 모습을

다 보았음에도 그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진짜인 것입니다.

잠깐은 척할 수 있습니다. 연기할 수 있습니다. 

가면을 쓰고 본래의 모습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늘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어떻게

계속 연기를 하며, 꾸밀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룻의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다!”

라는 이 고백은 단지 나오미의 신앙뿐만 아니라 

나오미의 일상에서의 삶을 평가해 주고 있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처한 상황은 믿음을 지켜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모스 신이라는 인신 제사가 일반화된 이방 땅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오미는  말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 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행동, 태도, 삶의 방식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둘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오미는 룻과 함께 고향 땅에 도착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나오미를 알아봅니다. 

그런데, 그런 동네 사람들을 보고 나오미가 어떻게 말합니까?

나오미는 기쁨,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자신을  마라라 부르라고 합니다.  

마라의 뜻은 괴로움, 고통입니다.

나오미와 그의 가족은 기쁨을 찾아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은  마라의 삶이 되었습니다.

괴로움, 고통의 삶으로 빈털터리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오미의 고백은 언뜻 들으면 하나님께 

원망하며 불평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망쳤다! 나의 인생을 괴롭게 했다!

하지만, 나오미의 고백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나오미는 하나님을 전능자라 부릅니다.

전능자는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입니다. 

엘 샤다이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케

하시는 능하신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다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순간 아마도 나오미는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오미는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 왜 그렇습니까?

“주신 이도 여호와이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시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욥기에 나오는 욥의 고백입니다.

나오미가 고백한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욥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호칭입니다.

고난 중에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도 

하나님을 전능자! 엘 샤다이라고 불렀던 욥처럼! 

나오미 역시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하시고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비록 나오미에서 라마의 인생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전능자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고난 중에 전능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주권 앞에 항복하여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혹시 고난 중에 계십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은 슬픔 중에 있습니까? 비록 힘들지만,

너무 괴롭지만 그 때가 바로 엘 샤다이의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축복의 때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나오미의 삶을 더 깊이 묵상할 수 있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비록 마라의 삶일지라도!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처럼!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 드러내는 하루 보낼 수 있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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