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절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각 어떤 절기인지 살펴보고
그 가운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살펴볼 절기는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쉬신 것을 기념하여 지킬 절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는 반드시 쉴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은 단지 쉼에만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먼저는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 목사님이 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으면 일곱째 날에 쉬셨을까요?”
물론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피곤하셔서
7일 째 쉬신 것을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 그리고 무엇보다 창조하신 후 심히 보기 좋았다고
말씀하신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가장 먼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통해 우리는 쉼이 필요한 자들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아주 많은 사람이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타의든 자의든 쉼 없는 노동의 현장에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 자들을 위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이 말씀은 일곱째 날 쉴 수 있는 우리를 향한 말씀이요
쉬지 못하는 자들이 쉴 수 있도록 육체의 쉼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영적으로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먼저 믿은 자들을 향한 명령인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살펴야 할 절기는
유월절과 무교절입니다.
출애굽 당시 열 번째 재앙이 내리던 날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을 유월(pass over)하여
첫 태생의 죽음을 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유월절입니다. 따라서 유월절을 통해
우리는 종 되었던 애굽에서 꺼내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어린 양의 대속의 죽음으로
인한 구원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유월절을 통해 우리는 묵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 날을 시작으로
일주일간 누룩 없는 빵! 즉 무교병을 먹으면서
애굽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누룩 없는 빵! 즉 무교병을 먹었다는 것은 그만큼
급하게 애굽을 탈출하여 나왔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누룩은 죄를 상징하는 것으로 누룩 없는 빵을
먹었다는 것은 죄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즉, 무교절은 죄의 종 되었던
삶에서 돌이켜 죄 없는 삶을 살게 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절기에 담긴 의미마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나의 죄를 대속하신 어린 양의
대속의 죽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대신해 죽으신 어린 양 예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여 감격하며 이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더 이상 죄의 종된 노예가 아닌 죄에서
자유하게 된자라는 죄인에서 의인 된 신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비록 삶의 현장 속에서 죄 가운데 무너질지라도!
나의 신분은 죄인이 아니라 의인임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이 예배의
자리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절기는 초실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즉,
가나안에서 추수한 곡물 중 첫 이삭 한 단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곡식의 첫 열매를
드림으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절기가 바로 초실절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실절은 곡식의 열매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기억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용된 “첫 열매”가 바로
오늘 본문의 10절에 초실절을 설명할 때 나오는
“첫 이삭”과 그 어원이 같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초실절에 기념해야 할 첫 열매를
부활의 첫 열매 되시는 예수님과 연결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역시 부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초실절을 통해 부활의 첫 열매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본 것처럼 우리 역시 예배의 자리를 통해
부활의 예수님을 보실 수 있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부활의 소망을 갖고 오늘을
담대하게 살아가실 수 있길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 안식일과 유월절, 무교절
그리고 초실절을 통해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의 크신 은혜!
여호와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실 수 있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