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을 말씀 속에는
너무나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는 두 부류의
인물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한 여인은 자신의 평생을 다해
모은 향유 옥합을 깨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것을
예수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너무나 대조적인 두 사람 아닙니까?
왜 한 사람은 헌신을!
반면 또 한 사람은 헌신의 장면을 보고도!
배신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분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뭐라고 말하면서 다그칩니까?
이 비싼 것을 팔아 저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도울 수 있었는데! 왜 너는 그것을 허비하고 있느냐?
낭비하고 있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들의 분노에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여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
여자를 다그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여인의 행동은 누구를 위한
일이었습니까? 예수님께 좋은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예수님을 위해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반면 분노하고 있던 제자들은 어땠습니까?
그리고 은 삼십에 예수를 팔 생각을 하고 있는
가룟 유다 역시 어떤 자였습니까?
말로는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하지만!
말로는 옳은 일, 정의
작은 자들을 위하는 척했지만!
그 마음의 중심에는 나 좋은 일!
내가 유익이 되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은 삼십 짜리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헌신과 배신의 차이는
나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느냐? 아니면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예수님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느냐? 그 차이에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허비하는 자들을 보며
손가락질 합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분개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좋은 일! 아니 예수님을 위한 일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룩한 낭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위한 좋은 일에는 결코
낭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친히 놀라운 일을 이루어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거룩한 낭비를 한 여인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여인이
기억될 것이라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어떤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으십니까?
복음을 위하여 예수님을 위한 더 좋은 일을 위하여
기꺼한 헌신한 자! 거룩한 낭비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은 자입니까?
아니면 오직 나 좋은 일을 위해, 나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도 은 삼십에 팔아 스승을 배신한 자입니까?